스케이트보드가 최근에 심심치 않게 보인다.
집 근처 하천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이 바퀴 달린 나무판자와 옥신각신하는 이들을 보곤 한다.
연령대도 다양하다.
보호 장구를 빈틈없이 착용한 꼬마 아이들부터 통 넓은 바지에 털 모자를 눌러 쓴 성인들까지, 스케이트보드에 매진하고 있다.
스케이트보드 위에 올라가 본 이들은 대부분 알 것이다. 이 단순한 나무판위에, 올라서있는 것조차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끝없이 도전 정신을 불러일으키는 이 마성의 매력이 80년 가까이 이어진 스케이트보드 역사의 원동력일 것이다.
사실, 스케이트보드의 역사는 평탄하지 않았다.
대중화에 오랜 시간이 걸렸을뿐더러, 법적으로 금지된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스케이터들이 어떤 사람인가? 안되면 될 때까지 부딪히는 사람들이다.
그들로 인해 현재의 정형화된 형태로 거듭나기까지,
스케이트보드는 오랜 시간 동안 크고 다양한 변화와 발전을 겪었다.
그렇다면 길고 고된 시간을 버텨온 스케이트보드, 그 시작은 어땠을까
1900 ~ 1950년대 : 스쿠터, 아이들, DIY
스케이트보드의 기원은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하지만 흥미로운 가설 중 하나는 20세기 초에 발명된 스쿠터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다.
스쿠터는 당시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시판되는 스쿠터를 구입할 돈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간단한 디자인을 모방해 많은 아이들이 직접 만들어 타곤 했다.
버려진 우유 박스나 나무판자에 바퀴와 핸들을 조립하면 당장 길거리를 활보할 준비가 된 것이다.
양 발중 하나는 몸체에 두고, 하나는 지면을 구르는 스쿠터의 이러한 운용법에서 스케이트보드를 고안했다는 설이다.
그 외에도 신발에 바퀴가 달린 형태의 롤러스케이트에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정확한 유래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1950 ~ 1960년대 : 파도를 땅 위에서 타고 싶어!
1950년대 초, 서핑의 성지 캘리포니아에 있는 서퍼들은 고민했다.
파도가 잠잠할 때도 서핑을 즐기는 방법을.
수완 좋은 서프 샵들은 이러한 고객들의 니즈를 놓치지 않고, 데크에 롤러 스케이트 바퀴를 달아 판매했다.
급조되고 볼품없는 제품이었지만, 서퍼들 사이에선 언제든지 땅 위에서 파도를 탈 수 있기에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서퍼들은 이러한 땅 위의 서핑을 사이드 워크 서핑 (sidewalk surfing)이라 이름 지었다.
이러한 유행을 유심히 관찰했던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래리 스티븐슨(Larry Stevenson)"이었다.
경영을 전공하고 해변을 사랑했던 스티븐슨은 캘리포니아에 최초의 스케이트보드 회사, 마카하(Makaha)를 설립한다.
또한 자신의 잡지에서 스케이팅을 서퍼들에게 장려하고, 1963년엔 역사상 처음으로 스케이트보드 경연 대회를 개최한다.
이러한 그의 노력에 부응이라도 하듯, 대중은 점차 스케이트보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스케이트보드는 미디어에 포착되었다.
도전 정신을 자극하고 신세대들이 즐기는 스포츠는 방송사들이 놓칠 수 없는 화제였기 때문이다.
매스컴에선 하드보일드한 스케이터들을 대신하여, 여성 스케이터 "패티 맥기"가 출연하였다.
맥기는 매력적인 외모와 뛰어난 스케이트보드 실력으로 역사상 최초로 후원을 받은 스케이터 중 한명이다.
그녀를 통해서 스케이트보드가 건강한 스포츠로 매스컴에 몇 차례 조명되자, 스케이트보드는 비로소 주류 문화로 격상하였다.
애리조나에 최초의 스케이트파크가 대중들에게 개방되고 방송사에선 스케이트보드 선수권 대회를 중계하였다.
또한 이 시기에 생산된 스케이트보드는 약 5000만 개로 추정된다.
이로써 스케이트보드는 성공적인 대중화를 이룬듯 보였다.
하지만 조악한 스케이트보드의 한계는 극명했다.
처음 스케이트보드 바퀴는 철로 만들어져, 거친 바닥에서 주행에 큰 어려움이 있었다.
단단한 철이 지면과 마찰이 일어나며 주행이 불안정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고자 발명된 것이 점토로 만들어진 바퀴였다.
재질이 부드러웠기 때문에 지면에서 발생하는 마찰력은 현저히 줄어들며 보다 안정적인 주행이 가능했다.
하지만, 유약한 성질 때문에 파손하기 쉬웠고, 부상의 위험이 커졌다.
그 결과 1965년 후반까지 수많은 스케이터들이 부상을 입자. 학부모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이를 무시할 수 없었던 정부는 곧이어 많은 도시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행위를 금지시켰다.
스케이트보드의 구매량과 판매량은 급격히 감소하였고,
흥행은커녕 존속 자체도 위협받을 지경에 이른다.
근대의 스케이트보드가 탄생한 지 불과 20여 년 만에 발생한 첫 위기였다.
…下 편에서 이어집니다
참조
위키피디아 <skateboarding>
칼럼 < Sidewalk Surfing: The Gnarly History of Skateboarding >
칼럼 < History of skateboarding: Notable events that took place >
기사 < RIDING CONCRETE: SKATEBOARDING IN CALIFORNIA >
스케이트보드가 최근에 심심치 않게 보인다.
집 근처 하천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이 바퀴 달린 나무판자와 옥신각신하는 이들을 보곤 한다.
연령대도 다양하다.
보호 장구를 빈틈없이 착용한 꼬마 아이들부터 통 넓은 바지에 털 모자를 눌러 쓴 성인들까지, 스케이트보드에 매진하고 있다.
스케이트보드 위에 올라가 본 이들은 대부분 알 것이다. 이 단순한 나무판위에, 올라서있는 것조차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끝없이 도전 정신을 불러일으키는 이 마성의 매력이 80년 가까이 이어진 스케이트보드 역사의 원동력일 것이다.
사실, 스케이트보드의 역사는 평탄하지 않았다.
대중화에 오랜 시간이 걸렸을뿐더러, 법적으로 금지된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스케이터들이 어떤 사람인가? 안되면 될 때까지 부딪히는 사람들이다.
그들로 인해 현재의 정형화된 형태로 거듭나기까지,
스케이트보드는 오랜 시간 동안 크고 다양한 변화와 발전을 겪었다.
그렇다면 길고 고된 시간을 버텨온 스케이트보드, 그 시작은 어땠을까
1900 ~ 1950년대 : 스쿠터, 아이들, DIY
스케이트보드의 기원은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하지만 흥미로운 가설 중 하나는 20세기 초에 발명된 스쿠터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다.
스쿠터는 당시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시판되는 스쿠터를 구입할 돈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간단한 디자인을 모방해 많은 아이들이 직접 만들어 타곤 했다.
버려진 우유 박스나 나무판자에 바퀴와 핸들을 조립하면 당장 길거리를 활보할 준비가 된 것이다.
양 발중 하나는 몸체에 두고, 하나는 지면을 구르는 스쿠터의 이러한 운용법에서 스케이트보드를 고안했다는 설이다.
그 외에도 신발에 바퀴가 달린 형태의 롤러스케이트에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정확한 유래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1950 ~ 1960년대 : 파도를 땅 위에서 타고 싶어!
1950년대 초, 서핑의 성지 캘리포니아에 있는 서퍼들은 고민했다.
파도가 잠잠할 때도 서핑을 즐기는 방법을.
수완 좋은 서프 샵들은 이러한 고객들의 니즈를 놓치지 않고, 데크에 롤러 스케이트 바퀴를 달아 판매했다.
급조되고 볼품없는 제품이었지만, 서퍼들 사이에선 언제든지 땅 위에서 파도를 탈 수 있기에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서퍼들은 이러한 땅 위의 서핑을 사이드 워크 서핑 (sidewalk surfing)이라 이름 지었다.
이러한 유행을 유심히 관찰했던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래리 스티븐슨(Larry Stevenson)"이었다.
경영을 전공하고 해변을 사랑했던 스티븐슨은 캘리포니아에 최초의 스케이트보드 회사, 마카하(Makaha)를 설립한다.
또한 자신의 잡지에서 스케이팅을 서퍼들에게 장려하고, 1963년엔 역사상 처음으로 스케이트보드 경연 대회를 개최한다.
이러한 그의 노력에 부응이라도 하듯, 대중은 점차 스케이트보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스케이트보드는 미디어에 포착되었다.
도전 정신을 자극하고 신세대들이 즐기는 스포츠는 방송사들이 놓칠 수 없는 화제였기 때문이다.
매스컴에선 하드보일드한 스케이터들을 대신하여, 여성 스케이터 "패티 맥기"가 출연하였다.
맥기는 매력적인 외모와 뛰어난 스케이트보드 실력으로 역사상 최초로 후원을 받은 스케이터 중 한명이다.
그녀를 통해서 스케이트보드가 건강한 스포츠로 매스컴에 몇 차례 조명되자, 스케이트보드는 비로소 주류 문화로 격상하였다.
애리조나에 최초의 스케이트파크가 대중들에게 개방되고 방송사에선 스케이트보드 선수권 대회를 중계하였다.
또한 이 시기에 생산된 스케이트보드는 약 5000만 개로 추정된다.
이로써 스케이트보드는 성공적인 대중화를 이룬듯 보였다.
하지만 조악한 스케이트보드의 한계는 극명했다.
처음 스케이트보드 바퀴는 철로 만들어져, 거친 바닥에서 주행에 큰 어려움이 있었다.
단단한 철이 지면과 마찰이 일어나며 주행이 불안정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고자 발명된 것이 점토로 만들어진 바퀴였다.
재질이 부드러웠기 때문에 지면에서 발생하는 마찰력은 현저히 줄어들며 보다 안정적인 주행이 가능했다.
하지만, 유약한 성질 때문에 파손하기 쉬웠고, 부상의 위험이 커졌다.
그 결과 1965년 후반까지 수많은 스케이터들이 부상을 입자. 학부모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이를 무시할 수 없었던 정부는 곧이어 많은 도시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행위를 금지시켰다.
스케이트보드의 구매량과 판매량은 급격히 감소하였고,
흥행은커녕 존속 자체도 위협받을 지경에 이른다.
근대의 스케이트보드가 탄생한 지 불과 20여 년 만에 발생한 첫 위기였다.
…下 편에서 이어집니다
참조
위키피디아 <skateboarding>
칼럼 < Sidewalk Surfing: The Gnarly History of Skateboarding >
칼럼 < History of skateboarding: Notable events that took place >
기사 < RIDING CONCRETE: SKATEBOARDING IN CALIFORNIA >